[강의록] 6강 신화 속에 담긴 젠더 이야기
2008/05/05 03:03 | 강의록 | Permanent link | posted by 원




4 22 / 강사 : 강소영

저는 강소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신화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1920~30년대, 그러니까 서구 문물이 들어와서 조선체계가 바뀌기 시작한 때, 까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서양보다는 우리 것에 익숙해져야할 것 같아서 단군신화와 관련된 읽기자료를 두 편 드렸습니다. 신화는 ‘법’이 없던 시기에 ‘이야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 안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중요하게 여긴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을 조사할 때 신화에 대한 연구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읽기자료 하나는 여러분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봤을 듯한 이어령 선생님의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된 입장의 김승희 선생님 논문입니다. 읽기자료를 못 읽은 다른 친구들을 위해 요약해주실 분?

나르샤: 일단 이어령 선생님은 단군신화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원래 용맹과 투쟁의 가치보다는 순박함과 인을 높이 샀고, 곰이 고초를 겪으면서 아름다운 인간 여자가 된 후 하늘과 땅이 통합되는 등, 다른 외국의 신화와는 다른, 굉장히 평화적이고 융화적인 신화라고 얘기하셨어요. 김승희 선생님은 그것과 반대되게 페미니즘 독해를 해주셨는데, 환웅이 그러잖아요. 니가 만약 여자가 되고 싶으면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간 빛도 보지 말고 동굴 속에 살아라. 그러니까 아버지의 가부장적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자가 자연적으로 갖고 있던 남성성을 버려야 한다, 고 해석하셨어요. 마늘과 쑥을 먹는 시련을 겪고 그 틀에 맞춰진 여자가 되어, 그 삶 속에서 여자로 살 수 있는 주체적인 성취를 겪게 됐다, 호랑이가 추방되면서 여자가 가졌어야 하는 남성적 젠더가 없어져서 여자가 불안정하고, 무의식적인 쉐도우가 있다고,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소영: 무의식적인 어떤 쉐도우요?

 

나르샤: 불안정하기 때문에 살면서 남성적인 면이 자꾸 드러난대요. ‘해와 달 오누이’에서의 얘기도 해주셨고.. 사실 그 아줌마가 떡 팔러 다니다가 결국 호랑이에게 잡혀먹어 남성적인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데, 호랑이 엄마가 오니까 오누이가 무서워서 하늘한테 도망치고. 호랑이 젠더를 되찾은 엄마는 하늘과 땅한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죠. 페미니즘 운동은 자기에게 원래 있었던 그 두 가지 성, 주체를 되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소영: 잘 요약해주셨습니다. 라깡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걸 먼저 이해하고 김승희 선생님 글을 읽으면 더 잘 이해되겠죠. 이어령 선생님은 곰과 단군의 결합은 땅과 하늘의 결합이다, 다른 나라는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는, 피를 부르는 전쟁이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하늘과 땅의 융합으로 세계를 창조했다, 그렇다면 왜 곰을 선택했을까? 곰은 인내와 끈기의 상징이다, 한국인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고 정리하셨죠. 만약 호랑이를 선택했으면 우리가 더 용맹하고 진취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끈기와 인내가 있는 좋은 민족이다, 라고 정리한 게 이어령 선생님의 70년대 글입니다. 김승희 선생님은 페미니즘 공부 후 자기가 보기에는 곰과 호랑이 다 땅에 있었던 만큼, 두 성질 다 인간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환웅과 결혼하려면 여자가 되어야 하고 그것은 남자 밑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호랑이를 버리고 곰만 택하게 되었다, 라고 해석하셨죠. 똑같은 신화지만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군신화를 아주 예전에 들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순 있지만, 곰이 삼칠일을 견디고 인간이 되어서 환웅과 결혼, 단군을 낳고, 단군이 고조선을 만들었다, 를 기억한다면, 그때의 사람들은 ‘여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이어령 선생님은 곰을 강조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 밑에서 태어나 인내와 끈기가 강하다고 해석하셨고 김승희 선생님은 우리는 양성을 되찾기 위해서, 그러니까 호랑이의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로 해석하셨습니다. 어떤 해석을 하느냐는 우리의 미래전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해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와 현재가 달라집니다. 나르샤는 어느 쪽 이야기가 더 괜찮다고 느꼈나요?

 

나르샤: 두 개를 섞어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개 다 쓰신 분의 주장이 너무 강해요. 김승희 선생님 글에서 ‘해님과 달님 오누이’ 얘기라든가, 여자들이 불안해한다, 그게 심리적인건지 사회적인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동감이 잘 안돼서 두 개를 섞으면 했어요.

 

소영: ‘해님 달님’ 이야기만 빼면 좋았을까요? 그 이야기는 너무 버전이 많아서 어느 쪽 구전설화를 택했는지 모르겠네요. , ‘해님 달님’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 오누이가 있고, 오누이의 엄마가 다른 부잣집에 일을 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 일을 해주고 부잣집에서 준 음식을 싸갖고 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해서 주니까 호랑이가 받아먹고 떠났어요. 그런데 고개를 지날 때마다 호랑이가 계속 나타나 자꾸 달라고 해서 결국 마지막 고개에서 떡이 다 떨어졌고. 그러니까 호랑이가 그럼 너의 팔을 줘라, 다리를 줘라, 하다가 마지막엔 엄마를 다 잡아먹었어요. 그런 뒤 엄마 옷을 훔쳐 입고 이번엔 오누이를 잡아먹으려는데, 오빠인지 동생인지가 손을 보고 호랑이인 줄 알고 숨었어요.

 

소영: 아마 호랑이는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 죽었을 걸요? 구전설화에는 팔을 뺏기고 다리를 뺏기고..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네요. 그 부분은 개작이 된 것 같아요. 김승희 선생님 얘기는 우리나라에선 해와 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호랑이가 배척을 당해야지만 해와 달이 열린다, 왜냐면 호랑이는 나쁜 사람,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였기에. 나르샤 말처럼 왜 이 얘기에서 굳이 무리하게 호랑이를 꺼내온 걸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해석과정에서 이어령 선생님도 무리수가 없는 건 아니죠. 곰이 세상에 나왔을 때 환희에 찼다, 라는 건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이고, 어쩌면 곰은 ‘내가 왜 이 짓을 했지?’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한계는 피할 수 없죠. 김승희 선생님은 처음 세상이 열릴 때 호랑이성이 배제됐고, 해와 달이 만들어졌을 때도 호랑이는 배척됐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인들은 호랑이성을 되찾는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할 수 있다, 고 해석 했지요. 그림자씨의 생각은?

 

그림자: 해와 달 얘기는 여전히 너무 앞서간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해석을 보고는 그러려니 했고요. 전 이어령 선생님 말에 더 동의했어요.

 

소영: 그럼 끈기와 인내로 뭉쳐진 여성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림자: 끈기와 인내가 나쁜 건 아니잖아요.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필요하고.

 

소영: 그게 걸린다고 한 사회학자도 많았어요. 역동적인 사회에서 왜 하필 한국인에게는 끈기와 인내냐? 그게 미덕일까? 하지만 그림자 생각에는 괜찮다는 거죠? 한결은?

 

한결: 두 번째 게 이해하기는 쉬워요.

 

소영: 그럼 단군신화를 해석할 때 이어령 선생님 이야기와 김승희 선생님 이야기의 각각의 장단점은?

 

한결: 두 번째 건 좀 갖다 붙인 거 같긴 한데요. 그렇게 의미부여 해놓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두 번째 게 더 맘에 들어요.

 

소영: 가람은 어때요? 아마도 여러분은 배우실 때 이어령 선생님 글로 배웠을 거고 김승희 선생님의 의견이 새로울 텐데?

 

가람: 남성성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소영: 호랑이성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공격적이고 진취적이고, 좋게 이야기하면. 곰성은 은근, 끈기, 하늘의 선택을 받는 인내력.

 

가람: 남성에게도 곰성이 들어가 있는 걸까요?

 

소영: 어머니가 가졌으면 남성에게도 유전됐겠죠.

 

가람: 대부분 남중, 남고에 가면 모든 아이들이 거의 다 호랑이성을 갖고 있잖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호랑이성이 뭔지 잘 몰라서 그걸 왜 되찾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전 뭔가 남성성, 여성성 하면 마초, 페미니즘 이런 것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 제일 쉽게 물리적의 것의 차이가 있을 거고. 남성과 여성의.

 

소영: 단순히 힘이 세다는 걸로 좌우되는 건 아닌 것 같고. 가람이 말하는 남성적이라는 건 뭘 함유할까요? 근육?

 

가람: 가부장적인 거 아닐까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소영: 그럼 압박을 주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건가요?

 

가람: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남성이 생각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그런 것들이 좀 있지 않나...

 

소영: 지시어들이 주는 애매함. 제가 추측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같이 남자분인 조화씨가 도와줘 보죠?

 

조화: 저는 읽기자료를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단군신화도 자주는 접했지만 세부적으론 잘 몰라서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이 호랑이성을 원한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만약 곰이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그게 좋으면 그대로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소영: 조화가 생각하는 곰성과 호랑이성은?

 

조화: 호랑이는 와일드하고. 곰도 와일드하지만. 호랑이는 되게.. 동물의 왕. 힘이 세고 동물 세계의 꼭대기에 있는. 곰은.. 곰도 무서워요. 둘이 싸우면 곰이 이길지도.

 

왕양: 곰이 친근한 게, 곰돌이 과자는 많지만 호랑이 과자는 없잖아.

 

가람: 치토스?

 

허브: 그건 표범이구.

 

왕양: 육식동물이지만 친숙하고, 영화에서도 ‘곰이 되고 싶어요.’ 그러지 ‘호랑이가 되고 싶어요.’ 그러진 않잖아요. 둘 다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람들, 그리고 저한테는 곰이 더 친숙하고. 호랑이는 보기도 어려우니까 멸종되어 간다고 느끼기 어렵죠.

 

소영: 곰을 보며 친숙하다는 게 우리나라만 그럴까요? 외국도 그럴까요?

 

왕양: 한국인의 동물이라 하면 다 호랑이라 그러지 곰이라 하진 않잖아요. 콘 프로스트를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지 곰 기운이 솟아나진 않잖아요.

 

가람: 사람이 죽은 척 하면 곰이 그냥 간다, 하는 얘기엔 곰이 부정적으로 나오잖아.

 

조화: 용이 우리나라에선 좋은 상징인데. 아들 낳고. 서양은 드래곤, 그래서 악마의 상징이죠.

 

소영: 곰이 친숙하다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라면, 우리는 ‘곰의 자식’이라는 무의식 때문이라면, 이어령과 김승희가 둘 다 바탕에 깔고 있는 전제를 증명하는 것일 거고. 전 세계가 모두 곰 캐릭터를 친근하게 느낀다면 단군신화를 얘기할 때 집어넣을 필요는 없겠죠.

 

이어령 선생님의 해석은 70년대에 나와서 90년대까지 지배적이었죠. 김승희 선생님은 거기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내가 보기엔 인간은 양성성을 가졌다, 옛날엔 인간이 수컷과 암컷의 기질 모두를 갖고 있었는데 퇴화되면서 여자는 페니스가 줄어들고 남자는 남아있고, 그런 차이지 원래 인간은 양성적인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이미 생물학에 나와 있기에, 그걸 받아들여서 단군신화를 재해석한 것이죠. 웅녀의 목적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오직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군이 나타나면 웅녀 이야기는 사라지죠. 김승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정적인 것부터 깨면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태도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pt 자료 (1)  p.02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사람들이 어휘를 쓸 때, 관념을 자기 위주로만 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서구사람들이 볼 때는 제3세계의 글이고, ‘아메리칸 시리즈’에는 ‘월드 시리즈’란 이름을 붙인다. 모두 서구인 중심사고를 드러내는 것들이죠. 또 ‘만나다’는 말은 흔히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말에서 시각 장애인은 배제된 채 살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걸 새롭게 바라보면 재해석의 여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어령의 단군신화 해석이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놀란 점도 사람들의 무의식적 의식을 처음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었죠.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고정관념을 깨면 새롭게 바라볼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이번엔 그리스 로마 신화 얘기도 해볼까요?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스토리가 있나요? 허브?

 

pt 자료 (1)  p.03~04

 

허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신들의 탄생 부분도 있을 거고. 우주의 탄생 부분에서 티탄 족을 물리치고 제우스가 형제들을 물리치고 최고자리에 앉고.. 또 산을 진 아틀란티스라든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복잡스러워요.

 

소영: 그렇죠. 절대로 계보를 그려볼 수 없는. 하지만 서양의 모든 예술과 문학에서는 근본이 되는 거라 여러분들이 반드시 알아두면 해요. 또 생각나는 거 있나요?

 

모두들 입 모아: 메두사. 황금사과. 아킬레스. 에코. 나르시스. 가이아. 타이탄. 비너스...

 

소영: 신들이 사랑을 많이 하잖아요. 부정한 사랑도 하고, 빼앗다시피 해서 데려오기도 하고. 그 당시 그런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썼겠죠. 또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당하게 써서 사람들이 읽고 그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하기도 했고. 사랑하면 떠오르는 얘기가 있지 않나요? 다프네 이야기는 생각 안 나시나요?

 

누군가: 나무로 변한 거요?

 

소영: . 왜 나무로 변했죠? 그 잘 생겼다는 아폴로가 따라와서 도망가다가 나무로 변했지요. 여러분들은 이걸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어릴 적 책을 읽었을 때는 아폴로가 다프네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다프네가 받아들여주지 않아서 이 남자가 불쌍하다, 라고 읽었어요.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그리고 그림에는 아폴로가 굉장히 잘생긴 신으로 나왔죠.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준다고 느끼게 하는 포맷. 그런데 제가 대학에 와서 들었던 질문은 네가 다프네라면 어떨 것 같으냐? 라는 거였거든요? 여러분이 다프네라면?

 

허브: 좋지 않았을 거 같아요. 스토킹이고. 아폴로가 신으로 안 보이고 미친놈으로 보이고.

 

조화: 아폴로 입장에서는 되게 슬펐을 거 같은데 여성의 입장에선 짜증났을 거 같아요.

 

소영: 지금도 아마 아이들의 동화책에는 낭만적인 사랑으로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신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읽혀지려면 좀 각색할 필요가 있겠죠. 너무나 좋아해서 결혼했다든지 해야지 강제로 빼앗았다든지 하면 좀 그러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낭만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신화인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는 거죠. 아폴로는 쫓아다니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라고만 합니다. 신이 자기가 선택한 여자들을 데려가다 부인을 삼을 때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남성의 소유욕을 드러내는 한 부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my”라는 표현이 계속 나옵니다.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내 나무가 되었구나. 내 머리, 내 수금, 내 화살 통에 그대의 가지가 꽂히리라.” 다프네 입장에서는 사랑이 아니라 남성 소유욕에 의한 참혹한 결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거죠. 스토커처럼 비쳐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냐면 아주 예전부터 남자들이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걸 신화를 통해서 계속 꺼내는 것이죠.

 

pt 자료 (1)  p.05

 

단군신화의 통과의례에 관해서, 김승희 선생님은 말도 안 된다, 인간이 되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여성에게 호랑이성을 제거하기 위한 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웅녀가 삼칠일간 그렇게 고생하고 나와서 고작 하는 게 단군 하나 낳고 사라지는 것이냐, 나라를 창조한 자를 낳았는데도 왜 그 후의 삶은 축소되고 보이지 않는가? 그걸 되짚어 보면 단군신화를 해석하는 과정에 깔린 남자들만이 아는 비밀이 있지 않을까? 왜 여자들을 자꾸 배제하려고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동명왕편”에서 유화 부인 이야기. TV에서 방영한 사극에서는 금와왕과 함께 몇 년 더 행복하게 살았던 이야기가 나오지만 실제 신화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억나시나요?

 

허브: 금와왕이랑 만나서 알을 낳기 전인지 후인지 아무튼 배가 불렀을 때 감옥에 갇혀 있다가 빛을 받아서 알을 낳게 되고, 그 알을 금와왕이 부수려고 했지만 결국 부화했는데 그게 주몽. 주몽이 너무 핍박받아서 말 타고 떠나라고 했는데 그 뒤로 주몽이 찾아왔다, 는 이야기.

 

소영: 유화가 어떻게 임신했는지 기억나요?

 

유란: 해모수랑.. 강에서 만나서.. 배를 쓰다듬어 줬나? (모두 웃음)

 

pt 자료 (1)  p.06

 

소영: (원문해석) 금와가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대답하되 나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다. 형제들과 더불어 놀러나갔는데 한 남자가 있었다. 스스로 말하길, 자기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다. 그가 날 유혹해 압록강 근처 집에서 사사로이 나를 취했다. 그리고 떠났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가 날 질책했는데 중매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기에 쫓겨나서 여기서 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이 만나서 위대한 인간을 낳았다는 포맷은 같아요. 단군이든 로마신화든. 그런데 “사사로이 취해서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중매하지도 않고 애를 가졌기에 하백이 유화를 책망했다고 하는데, 또 다른 버전의 얘기도 있습니다. 하백이 해모수가 천자의 아들임을 알고 반겨 맞았다. 그가 떠날 때, 우리 딸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 데리고 갈 거라는 약속까지 다 받고 딸을 줬다는 얘기도 있죠. 이 얘기대로라면, 유화는 왜 쫓겨났을까요? 아버지가 다 허락했는데? 답은? 해모수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아이를 가진 채 살아요. 수치스러워요. 쫓아내는 거죠. 그래서 금와왕에게 가서 아이를 낳고 살게 됩니다. 하백은 해모수가 천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뭐 해볼까 싶어서 딸을 팔았거든요. 근데 해모수가 돌아오지 않자 딸을 가차 없이 팔아버린다, 당시 남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여자라는 것은 결혼의 도구이고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맘대로 추방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건국신화 이면에 존재하는 것으로 역 추론 하는 거죠.

 

pt 자료 (1)  p.07

 

소영: 서동요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가람: 애들한테 노래시키고. 소문나게 하고. 그래서 공주 쫓겨나게.

 

소영: 그래서 서동요가 그 여자와 살게 됐죠.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 놓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집에 돌아간다.” 는 음란한 노래. 시집 안 간 처녀입장에선 끔찍한 이야깁니다. 그걸 아이들한테 유포시켜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어요?

 

그림자: 명예훼손죄.

 

소영: 세상 많이 좋아졌지요. 명예훼손죄로 고발도 할 수 있고. 제가 읽은 책에선 이것도 “사랑하기 때문에” 였습니다. 하지만 이걸 조장한 사람은 선화가 아니라 서동입니다. 자기 혼자만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일 수 있나? 라는 얘기와 맞물려 있죠. 신화의 주인공은 여자가 아니기에 남자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자를 쫓아다닙니다. 그게 당시의 그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걸 바라볼 때 “이미 존재했던 사건들”, 그리고 “내 생각” 사이에 어떻게 차이가 존재하는가? 항상 다른 이들의 해석이 옳다고만 전제하지 마시고 내 생각과 그 사람들 생각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를 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신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까지 남성중심적인 세상을 살다가 조선이 다 망가지고 나서 서구의 평등주의가 밀려오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때를 “개화기”, “계몽기”, “근대” 등으로 부르는데 그때의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라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싶습니다.

 

pt 자료 (2)  p.01

 

이 자료는 신문에서 뽑아 와서 그림이 기울여져 있습니다. 여자들이 장옷을 벗고 바깥에서 걸어 다니던 시기가 근대입니다. 서구문물이 밀려와서, 여자는 집안에 가두어져 있어야 한다는 금기가 깨졌죠. 물론 이때에도 사대부 집안에서는 잘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음껏 나돈 건 기생이었죠. 이름은 춘외춘. 유명한 기생입니다. 위의 사진은 스무 살 정도의 모습. 굉장히 유명했을 때. 밑의 사진은 서른 살의 노기. 일제치하 시기에 일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조선을 지켜내려 했기에 “의기”로 이름 높았던 기생입니다. 이 당시에는 갓도 쓰고 있고 조선의 냄새가 많이 남은 모습입니다.

 

pt 자료 (2)  p.02

 

왼쪽 삽화의 여자는 심순애. 오른쪽은 사채업자. 서양식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죠. 심순애의 경우 머리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트레머리”라고 부르는 머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복을 입고 있어요. 저 정도면 많이 개화한 여자였습니다.

 

pt 자료 (2)  p.03

 

“마리아의 반생”이라는 만화입니다. 여자가 애를 임신하고 뽀글 파마를 하지 않고 심순애처럼 트레머리로 올렸어요. 자기 얼굴이 너무 예쁘고 멋있고 비너스 같다고 한 다음에 길에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남편의 친구인데 여자의 손을 잡아끌면서 기생이니까 내 집으로 끌고 가겠다, 라고 합니다. 남편이 아니다, 내 마누라다, 라고 하니까 친구가 믿어주겠다며 인력거를 불러준다더니 마지막엔 다시 기생이니까 내가 데려가겠다고 하죠. 당시에 트레머리에 한복차림을 한 여학생들이 많아지니까 기생과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서양 옷을 입었다면 구분이 됐겠지만 트레머리에 한복은 구분이 어려웠다. 달리 말하면 남성들이 사랑을 하기 전에 기생을 먼저 만나보고, 여학생들은 멀리서 경원하듯이 했다는 걸 생각할 수 있죠.

 

pt 자료 (2)  p.04

 

밑의 만화는 “여보, 꽁지 빠졌소” 라는 만평. 당시엔 이렇게 붙인 머리를 한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는 단발을 많이 하고 다녔지만 붙인 머리로 예전의 모습을 고수해야지만 요조숙녀처럼 보일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죠. 문이 많이 열린 거 같지만 여자들에게는 문이 많이 닫혀있었습니다.

 

pt 자료 (2)  p.05

 

동네를 걸어 다니던 어떤 여자가 지금 같으면 남자들이 추파를 던져서 다니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사랑을 구걸할 때 바이올린, 바이런 시집 같은 것들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랑”은 서구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사랑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것들은 서구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사랑”은 조선에서 생긴 단어가 아니고 서구에서 들어온 거죠. 15세기에 “사랑하다”라는 단어는 원래 “생각하다”라는 말이었어요. 개화기 때 “Love" 개념이 들어와서 "사랑"이 처음 생겼어요. 우리 것이 아니어서 남의 것으로 지칭할 수밖에 없었죠.

 

pt 자료 (2)  p.06

 

이건 여학생의 모습입니다. 시간표 보면 아침에 학교도 가고, 오후엔 극장에 가고, 강독회에도 가서 공부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어코 입학해서 넉 달이 못됐는데 시간표는 이렇게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이 사람이 하는 것은 책을 읽는 공부인데, 시골에서 돈 보내는 학부형들 잘 보시오. 무엇을 읽고 있는가? 사랑은 달다, 사랑의 불꽃.. 모든 게 다 사랑. 비싼 돈 주고 학교 보냈더니 사랑타령 뿐이다. 학교당국, 부모들 정신 차려라.”라는 내용이죠. 당시 남녀학생들의 가장 큰 모토는 사랑이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pt 자료 (2)  p.07

 

이건 “방학동안의 경성거리” 라는 제목의 그림. 남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집에 가야합니다. 집에서 돈을 보내주는데 가난하니까 방학 때는 집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여학생의 경우는 학교에 다닐 정도면 부자기 때문에 방학 때도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 요리 집, 과자 집, 학용품 집.. 여기엔 서점도 있지만 여기엔 매독 치료하는 병원. 당시 대학가 풍경입니다. 악기 파는 집, 화장품 집.. 전부 남녀가 둘이 사랑할 때 남자가 여자들에게 사다주는 것들입니다. 방학이 돼서 남자들이 떠나면 그것을 사러오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돈을 못 벌어 월세도 낼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당시 학생들이 얼마나 사랑에 열중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pt 자료 (2)  p.08

 

이때 남자들은 열일곱, 어리면 열셋 정도에 결혼을 해요. 집에서 양가 어른이 맺어주는 결혼. 그래서 보통 집에 다 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러 오면, 여자들이 보여요. 감정을 자극시키고 사랑하게 만드는. 주로 신여성들. 트레머리에 바이올린을 든 신여성들. 이런 여자를 보고 어른들은 “아따, 그 계집애 건방지다, 누가 데리고 사냐?” 여기 밑에 있는 남자는 “그거 참 이쁘다, 장가나 안 들었으면 내가 어떻게 했을 텐데, 쳐다만 봐주면 인사나 하지, 쳐다도 안 봐준다” 는 얘기를 합니다. 그게 어른들과 학생들이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차겠죠.

 

pt 자료 (2)  p.09

 

유부남이 신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헤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자유연애를 주장하는데, “어디 얼마나 이상적인 아내, 그러니까 신여성이겠죠, 와 잘 사나 보자.” 그 당시엔 이혼이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평이 실릴 정도면. 사실 이혼당한 여자들의 마음은 저런 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여학생들이 더 이상 예전의 여자들이 아니었거든요.

 

pt 자료 (2)  p.10

 

은유. 내 마음은 호수요. 흔히 이런 게 은유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은유가 시 안에서만 있는 건 아니죠. 우리가 하는 모든 말 안에 은유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pt 자료 (2)  p.11

 

논쟁을 할 때 “내가 방어할 수가 없다 (Your claims are indefensible)” 이런 이야기 많이 하시죠. 논박하다가 내가 몰렸을 때, “나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와서 공격했다. (He attacked every weak point in my argument)” 혹은 “그 사람의 비평은 적확했다. (His criticisms were right on target), “내가 그의 이야기를 분쇄시켰다. (I demolished his argument), “그 사람과의 논쟁에서 나는 결코 이길 수 없다. (Ive never won an argument with him)” 이긴다는 건 보통 전쟁에서 쓰는 말입니다. You disagree? Okay, shoot”에서 shoot 총을 쏘다라는 뜻이고, “네가 전략을 사용한다면 네가 날 무찌를 거다. (If you use that strategy, hell wipe your out) wipe out, 싹 쓸어버린다, 전쟁용어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도 이렇게 말하죠. 어느 자리에서 이야기 했는데 내 이야기가 한순간에 다 허물어졌어, 이겼어, 같은 전쟁용어들. “말싸움”이 벌어진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는 말의 모든 것이 다 은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이 아까운 시간을 여기에 투자했는데 건진 게 없다, 투자,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내 머리가 꽉 차서 받아들일 수 없어, 머리를 그릇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은유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걸 잘 들여다보면 뭔가 통찰하는바가 있지 않을까?

 

pt 자료 (2)  p.12

 

잡지에 나온 문장들입니다. “여자는” 뒤에 붙은 말들. “사버리고” “팔고 얻어먹는” “얻는” “쓰는” 이런 개념들은 여자를 무엇으로 바라보는 거죠? 물건으로 바라보는 거죠. 살수도 있고 쓰고 버릴 수도 있고. 그런 은유가 많았죠.

 

pt 자료 (2)  p.13~15

 

다른 유형은 이런 것들입니다. “차지하고” “가지고” 이럴 때의 여자는? 물건, 물건 중에서? 밑에 한자로 적혀 있죠.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버리다” “두다” 물건 중에서도 폐기물이죠. 버려도 되는 거거든요. 반면 남자에 관한 문장에서는 “구하고” “선택하고” “얻어주고” 라는 단어를 쓰죠. 소유의 대상 혹은 “버리다”라고 하지는 않죠. 당시에 자유결혼, 자유연애가 많아 남녀가 평등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여자는 물건이며 소유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가람: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

 

소영: . 여자를 식물로 은유하는 것도 많죠. 어떤 식의 식물이냐? “찍는” “짓밟는” 식물. 우리도 은연중에 그런 말을 쓰죠. 카이스트에서 만든 말 뭉치가 있어요. “여자”라고 검색했을 때 나온 은유들이 팔고 사는 대상이거나 음식에 대한 것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실제로 어떤 표현들을 쓰고 있느냐는 우리가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죠. 근데 1920년대와 지금이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현대로 내려오면 오히려 잦은 빈도수로 나타나죠. 예전엔 자유결혼이나 자유연애가 이상적으로만 존재해서 그러려니 칩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왜 여자는 그런 수식을 받아야 하는지? 사람들의 말 속에 사람들의 의식이 내재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만들어낼 글과 사용할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남자를 수식할 때는 그런 단어들을 안 쓸까요?

 

조화: 쓰지 않을까요? 여자들도 사랑은 차지한다고 하지만, 근데 남자만큼은 아닌 거 같아요.

 

소영: 남자들이 그 말을 더 많이 쓰고 여자들은 적게 쓸 것이다? 그런데 빈도수 차이를 조사했을 땐 큰 차이가 없었어요. 남자도 정복해야할 대상, 넘어야 할 산, 버리고 얻을 대상으로 표현되더군요.

 

가람: 어떤 말들이 있어요?

 

유란: 내 꺼.

 

소영: 그렇죠. 여자들도 남자를 정복의 대상이며 소유물로 생각한다고 나와요.

 

가람: 그런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않나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대체 어떤 말을 써야 하나요?

 

소영: 조심해서 써야죠. 사람들이 생각 없이 쓴다, 그건 이미 내 무의식에 아주 깊이 들어왔다는 거죠. 이미 그렇게 뿌리 깊게 내 것이 됐다는 거잖아요. 그걸 낯설게 여기지 않는 게 더 무섭죠.

 

가람: 저는 강의를 듣기 전부터 이런 얘기를 생각해 와서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문제제기를 하면 별로 설득이 안 될 거 같아요. 저는 아니지만. 뭔가 더 구체적인 것들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소영: 대체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죠. “남자어”와 “여자어”라는 게 존재한다면 남자에도 여자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된 말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물론 애매하긴 해요. “의사”라고 불렀었는데 여자 의사가 생겨나서 “여의사”, 그건 차별이다, 그럼 “남자의사”, “여자의사” 라고 부르면? 그건 언어 낭비가 아니냐?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덮어두고 쓰는 건 다르죠.

 

가람: “여자친구 내 꺼다” 이런 말들 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말들을 바꾸고 싶을 때 대체어가 없잖아요. 내가 조화한테 “멍청해” 라고 했을 때 조화가 나한테 “그거 폭력이야” 라고 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문제가 제기됐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죠. 전 그냥, 애매모호하게 넘기자, 그러지만 전 괴로운 거죠.

 

소영: 그러니까 그걸 알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건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것과는 차이가 있죠. 결과가 딱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헛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구요. 이런 저런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죠. 여성부에서 하는 일들이 그런 거죠. 대체어를 찾는 거죠. 연구하고 설문조사하고. 그런데 여성부를 폐지하라는 얘길 들으면? 한번쯤 생각해보겠죠. 여성부에서 이런 좋은 걸 한다는데 폐지해도 될까? 여성주의자들의 출발점이죠. 그런 걸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힘은 사람들이 “이런 건 문제이지 않을까?” 하고 되짚는 것 자체라고 생각해요.

 

과제는 지금까지 배운 게 실제로 그러한지 아닌지 여러분이 봐야할 것 같아서, 여러분들이 자주 보는 게시판에 들어가면 글들이 많이 써있고 퍼올 수 있죠. 자료로 만들어서 쭉 읽어보면서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지를 살펴보면 어떨까. 글을 남긴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라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건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에 대해 글을 남겨주시면 제가 논문을 하나 보내드릴게요.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가람 같은 이야기여도 좋고. 어떤 글을 쓰든 자유입니다. 분량은 그래도 A4 한 장. 이야기를 쓰다 만 듯 한 건 여러분들의 생각의 깊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러면 제가 논평을 써서 드릴게요. 그 중 잘된 것이 있으면 다음 시간에 읽어보고 나눠보고 합시다. 대체어 이야기도 좋고 여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도 좋습니다. 구현정 선생님의 논문도 여자들에 대한 어휘를 다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것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그걸 토대로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서 제출해주세요. 제가 카페에 참고문헌 몇 개 올려놓을게요.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 중에 알아야 하는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현대가 자본주의로 돌아서면서 모든 것을 소유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단순히 여자만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과제를 통해 여러분이 그런 점을 제기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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